이따금씩 들려오는 한인 여행객들의 안타까운 소식들.
크든 작든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분들에게는 위로를 해야 되겠지만, 가끔은 왜 그럴까 궁금해집니다. 유난히 한국분들이 많이 당하는 이유는 뭘까요?
파리 공항에 내려서 파리로 가는 전철을 타러 갑니다. 티켓을 팔고 안내하는 직원은 한 두 명 보이고 줄도 길죠. 그 옆에는 사람이 아닌 기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다행히 좀 널찍하게 있긴 해요.
비자 카드도 가지고 있고, 현금도 가지고 있으니 줄을 안 서도 되겠다 싶어서 비어 있는 기계나 줄이 짧은 기계 앞으로 갑니다. 다행히 영어로 메뉴가 나오니 해볼만 하겠다 싶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당황하시거나 착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돈 넣으면 표가 나와야 되는데, 화면에서 자꾸 뭘 물어본다 말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말이 많으니 기계도 말이 많은가 보죠.
잠시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로 당황하고 있는데, 뒤에서 역시 나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납니다. 영어인지 불어인지 명확하진 않아도 도와준다는 것 같애요. 그렇죠.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프랑스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죠.
기계 화면과 달리 한 두 가지 물어보더니 돈을 30 유로 달라고 합니다. 야~ 파리 전철 비싸다 그러더니 진짜네~ 하면서 돈을 꺼내 줍니다. 거스름돈도 돌려 주고 그러는데 설마 내가 당하고 있을리가 없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 착각하지 마세요. 도와 달라고 하기 전에 도와 주겠다는 사람, 90%는 좀도둑입니다.
후다닥 설명하면서 표정을 보니 진짜로 도와주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으면 돈을 많이 부릅니다. 의심하면서 화면을 차분히 들여다 보면 들통날까봐 조금만 사기 치거나 포기하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을 진짜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는 기분 좋게 돈을 엄청 내고, 숙소에 도착해서야 좀도둑한테 당했다는 걸 알지요.
다음 날 즐거운 여행을 위해 어제 일을 잊어 버리고 벼르고 벼르던 에펠탑을 향해 갑니다. 전철에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거기가 맞나 보다 하면서 말입니다.
에펠탑을 올려다 보면서 기분이 에펠탑 꼭대기 위로 올라가는데, 한국 말로 인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어떻게 알았지? 역시 나를 알아 보나 보다... 나 에펠탑 봐야 돼 하면서 의젓하게 사진을 찍으려는데 무슨 서명 노트를 들이밀지요. 대충 들어보니 불쌍한 아이들 도와주는 서명이라고... 햐 내가 파리에 오니까 날 알아 보고 내 서명을 받으려 하나 보다. 착한 일인데 서명 쯤이야~~ 하면서 멋지게 날려 줍니다.
그랬더니 주위에서 사람들이 막 몰려 들죠? 서명해 주니 고마워서? 황송해서? 뻔하죠? 서명으로는 부족하니 돈을 달라는 거죠...
아프리카 아이들일 거라고요? 유니세프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도와줘도 됩니다. 당신이 파리 왔다고 영국 왕자가 방문한 것처럼 둘러싸서 서명해 달라고 할 까닭이 있을까요? 그 집시들이 얼마나 할일이 없다고 자기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아이들을 위해서 서명 운동?
#### 착각하지 마세요. 프랑스 아이들은 정부에서 다 키워 줍니다. 에펠탑까지 와서 서명?
몇 발자국 더 움직이면 이제 선물 주겠다고 모여듭니다. 나를 어떻게 알아보고 선물을? 필요없다고 사양을 하시겠죠. 그래도 주겠다는데... 너무 사양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사양을 한다고 반응을 하면 할수록 더 집요합니다.
어린 꼬마애들은 내가 아주 잘 생겨 보이니까 뻔히 쳐다보는 것 같죠? 이유식 할 때부터 전철을 누비면서 구걸하던 집시들입니다.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관심도 없으면서 뻔히 쳐다보면 웬지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는 사이 그 가족은 여러분들의 핸드폰을 노리는 겁니다.
#### 착각하지 마세요. 집시들은 여러분의 얼굴에서 돈을 엿보고 있습니다.
괜히 으시대면서 서명하고 기부도 하고, 그러다 보니 현금 서비스를 좀 받으려 합니다. 여기 저기 돈 뽑는 기기는 많이 보이죠.
차라리 사람들이 많은 데라 줄이 길고, 좀도둑들이 조금 조심할 만한 장소면 나을텐데, 줄 서기 귀찮다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으슥한 기기 앞에서 돈을 뽑으려 합니다. 카드 집어 넣는 방식도 웬지 좀 낯설고, 좀 익숙해 지려는데, 지나가던 친절한 행인이 도와 주겠다고 나섭니다.
뭐가 잘 안되느냐? 당신 한국 사람이냐? 하면서 말입니다. 좀 능숙능란한 애들은 한국말로 인사까지 해요. 한국 친구도 많다네요. 자기 밥벌인데, 한국말 몇 마디 못하면 도둑이 아니죠...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아니 내색을 않고 진짜 도와주는 놈들이라 믿고 싶지요. 돈 뽑는 거 보면 표가 나는 모양입니다. 태연한 척 하면서도 자꾸 망설이고, 다시 보고, 비밀번호 누르는 것도 한참 걸리고, 확인도 안 누르고 그러니 시간이 많이 걸리죠.
등 뒤에서만 봐도 표가 납니다. 그러니 도와주겠다고 말을 걸고는 돈이 나오는 순간까지만 도와주고, 돈이 나오면 지가 주인 하겠다고 가로챕니다. 돈 뽑는 기계 앞에서는 경찰이라고 떠들어도 여기 사람들은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멀찍이서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도와 주겠다고 다가오는 놈은 99% 좀도둑입니다.
#### 착각하지 마세요. 돈 뽑는 기계 앞에서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돈 뽑을 때까지만 도와줍니다. 카드는 보너스...
교통비 아낀다고 많이 걸었더니 다리도 조금 피곤하고, 무료 화장실은 안 보이고, 목도 좀 마르고... 그러자니 프렌치 까페 생각이 나죠. 날씨는 무지 더운데 그늘에서는 그런대로 견딜만 하니 까페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도 한 잔, 화장실도 공짜, 쓸만한 셀카 배경... 좋지요.
괜히 긴장을 많이 하던 사람일수록 까페에 들어가면 더 헤이해지는 건가요? 야외 테이블에 앉아도 까페니까, 좀도둑들이 까페까지 나를 따라올까? 절대 그럴리 없다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죠?
아닐 것 같다고요? 일단 테이블에 앉았다 하면 탄탄히 가방을 앞으로 매던 사람도 테이블에 턱 풀어 놓고, 핸드폰도 얹어 놓고, 가끔은 지갑도 올려 놓는 사람들 있습니다.
#### 착각하지 마세요. 에스프레소 음미하는 순간에도 좀도둑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테이블 위에 귀중품들 낚아 채서 튀면 기껏해야 뒷모습 보고 어~~ 어~~~ 하고 끝납니다. 거긴 까페 안이 아닙니다. 큰 길 가운데 물건 올려 놓고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핸드폰에 일련번호도 있고, 비밀번호도 있으니까 안전하다고요? 아이폰 탈옥이라고 하죠? 금방 초기화 시켜 먼 나라로 팔아 넘깁니다. 안드로이드는 뭐라고 하죠? 열심히 찾아 보는 사이에 그 멋진 갤럭시는 다른 주인을 만나 봉사하고 있습니다.
귀중품 소매치기 당했다고 샹젤리제 부근 경찰서에 많이 들르시더군요. 오죽 많으면 한글로 신고 양식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루브르나 몇몇 유명 박물관의 한글판은 우리 기업들이 기부해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경찰서에 한글 양식이 있다?
국위 선양일까요? 한글에 대한 자부심? 그거 느끼기 전에 속이 너무 쓰립니다. 경찰관이 친절하게 서류를 작성하라고 하는데, 혹시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착각하지 마세요. 핸드폰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찾아주겠다고, 찾을 수 있을 거라도 생각하는 경찰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당신 보험 회사에 필요한 서류니까 빨리 작성해라. 도장은 찍어 줄께... 멀리 와서 소매치기 당해서 위로하는 마음을 가진 경찰도 없습니다. 그냥 빨리 작성해서 도장 받고 가던 길 가세요... 그거죠.
|